인물소개 -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이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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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이광복

이정록 0 2,281 2019.08.05 04:54

SAEMTEO NEWS        

       ■|||인물 소개|||■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에 취임한 이후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시는 이광복 이사장을

본지 발행인이 취재를 하였다. 

 
지난 2019년 2월 13일 이광복 소설가 가

한국문인협회 제 27대 이사장에 당선되어
취임식을 가졌다.

그는 충남 부여 출신으로

1973년 문화공보부 문예창작 현상모집

장막희곡의 입선한 후

신동아 논픽션 현상모집 당선,

현대문학 소설부문 등단,

월간독서 장편소설이 당선 되었으며,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 기자로 출발하여

편집국장, 소설분과 회장, 이사, 상임이사,

부이사장, 등 많은 이력이

그가 이번의 한국문단 대표성을 갖는

문학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늘 부지런함이 몸에 내재되어

이념처럼 그의 몸을 끌고 다닌다.

그를 원하는대면 문인이든 독자든

어느 누구든 문단을 위하는거라면 만나서

교감을 갖는다.

몸이 부스러져라 여러몫을 해내는

초인적인 업무수행인 것이다.

한국문단에 발전을 위해서 선재적, 선도적,

선구자적,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그는 어느 이사장들과는 달리 오만하지 않고

솔직 담백하고 겸손하다.

그리고 측은지심이 있는 휴머니스트다.
늘 낮은 자세로 모든 문인들을 아우르고
품어 안는다.
이사장 선거 시 공약을 떠나서 그는

혁신을 들소처럼 바람처럼 소리없이 추진한다.

사고를 칠 것만 같다

재임중 노벨상 수상 같은 것 말이다.
그의 행보가 많이 기대된다.

저서로는 소설집 "화려한 밀실" 등 21권을
출간하였고, 콩트집, 전래동화, 교양서적,
시나리오, 등 수십 권을 출간하였다.

수상으로는 1987년 대통령표창을 필두로
한국소설문학상을 비롯하여 PEN문학상 등
다수(17회)가 있다.

한국문인협회 역대 이사장에는 말만들어도
존재감있는 문인들로 전영택, 박종화, 김동리
조연현, 서정주, 조병화, 황명, 성춘복, 신세훈,
김년균, 정종명, 문효치,
그리고 이번에 취임한 이광복 이사장이다.

 


그럼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나보자
 

- 살며 생각하며

 

  까막눈의 가르침

 

              이광복

 

조상 대대로 유복했던 부잣집에

난데없이 괴질怪疾이 들이닥쳤다.

한 해 남녀노소 일가족 열 명이

잇따라 급사急死했다.

가세가 속수무책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형제가 있었다.

그들은 조부모·부모님의

3년 상을 치른 뒤 빈털터리가 되었다.

처참한 몰락이었다.

 

우애 좋은 형제는 풍비박산風飛雹散

황망 중에 일단 목숨이나 건질 요량으로

부랴부랴

악몽 같은 그 동네를 벗어나

이웃마을의 날품팔이가 되었다.

형님과 아우는 다섯 살 터울이었다.

형님은 만삭滿朔의 부인과 사별하는 아픔을 거쳐

얼마 후 두 번째 부인을 맞이했다.

하지만 아우는 혼인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형님이 가문의 비극을 탄식하며

술과 눈물로 세월을 보낼 때

아우는 묵묵히 일에만 매달려 근동에서

성실한 일꾼으로 정평을 얻고 있었다.

 

한편, 졸지에 조실부모早失父母

고아 3남매가 있었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이산가족이 되었다.

막내 소녀는 어느 낯선 마을에 들어가

잔심부름과 허드렛일을 하면서 겨우 밥이나

얻어먹는 부엌데기가 되었다.

언니와 오빠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생사조차 알 수가 없었다.

소녀는 새록새록 자라

부지런한 살림꾼으로 거듭났다.

 

 

연분이란 정말 오묘했다.

누군가의 주선으로 성실한 일꾼

부지런한 살림꾼이 신접살림을 차렸다.

우리 부모님이었다.

내외분 사이에는 11년의 연세 차이가 있었다.

금슬琴瑟이 참 좋았다.

부모님께서는 어린 둘째딸을 큰집,

즉 형님 댁으로 보냈다.

자녀를 두지 못한 형님 내외분의 외로움을

덜어드리기 위한 뼈저린 결단이었다.

 

부모님은 그로부터 3남매를 더 낳아 모조리 잃고,

새로 얻은 나를 젖 떨어지자마자

또다시 큰집으로 보냈다.

종가宗家의 대를 잇기 위해 양자로 바친 것이었다.

인습因習이 만들어낸 통한의 생이별이었다.

부모님의 억장이 무너졌다.

 

내가 그 사실을 눈치 챈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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