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샘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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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문학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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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샘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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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록 시인 (14.♡.74.84) 작성일19-07-05 23:11 조회1,9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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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m news

            -- 샘문학상 수상작 연제 스토리

 

 

【제 1회】 우수상 입상작


 [시] 쉬었다 갈 뿐인데 / 정상원 시인


생각은 검어서 보이지 않고

하얀 색상은 잃어버린 느낌을 만질 수 없다

꺼져가는 기억의 잔해가 바위에 걸쳤다

사라져 간 바람의 색깔은 투명이어서 쉬어가지 못함도

보이는 사물의 끈적임 때문이다

끈적임을 인연이라 한다면 한 톨의 씨앗도 홀로이지 않아서

끈은 끈으로 옭아맨 연줄이 되었다

향기 품은 연기처럼

길을 간 올라감에도 바람은 솔깃하지 않았다

순리에 피어난 고리가 되는 잠깐이란 말 속에

바람은 버걱거리는 소음에 묻어간다

인연이란 웃음을 놓고 가지 않아서 멀어져 간

별리의 속성에 두드림은 끝이 없다

두드려도 대지에 남긴 언덕위에 그리움을 던지고

잡은 손 풀어짐에 이슬을 머금는다

굴러간 낙엽은 간다는 눈짓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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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하루의 서랍 / 황선양 시인


햇살이 밖으로 빗장을 열고
달빛이 안으로 빗장을 닫는다
낮에 열고 밤에 닫아버리는 하루의 서랍
그 안에는 바람의 생을 저축하는
통장이 있다
내가 알 수 없는 침묵이 깃든 시간의 뜰에
이유도 없이 바람이 쌓인다
그 안에 그들이 찍은 사진이 들어있다
초록의 잎사귀를 흔드는 일은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몸에 쌓인
독소를 털어내는 일
그리하여 그 난에 빛과 어둠이
환승하는 때가 있다

그렇게 오전 오후의 생존방식은
늘 한 몸이면서 다른 사유가 있다
밤에는 내게 인식되지 않은 공음*들이
달빛으로 떠돌고 있다
그런 풍경을 보며 나는 늘
하루가 매몰되어 가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는 하루의 서랍이 있고
그 안에는 내일을 여는 바람이 있었다


 * 공음(跫音) : 그리운 사람의 발자국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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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여우비 / 전양우 시인


봄나들이 갔다가

천지에 붙은 불이 내 몸을 태우고 말았네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터져나는 온 몸을 꼭 부여잡고는
숨만 새근새근 쉬는 산새가 되었네
진홍빛 향기 속에 목숨마저 마취되니

그대는 날 보는 것이오
내가 그댈 보는 것이오
훠어이 훠어이
그대 죽어서 이 자리에 피어나
푸른 웃음 빨강 웃음 모다 터뜨리는데

불붙은 강을 건널까나
산 같은 파도를 헤칠까나
시뻘건 불에 눈멀고
거친 파도에 가슴 시려
4월을 붙들고 통사정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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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단비 / 오애숙 시인


열대야로 팍 사그라든 열무처럼
황폐함 해골 골짝 되어 들판 가르고
한여름 타든 열기에 만신창이다

가뭄에 논 쩍쩍 갈라져 자라 등처럼
애처롭게 사위어 황폐해 간 심신
갈맷빛 물결치기까지는 그러했네

하늘 창에 살포시 한조각 매지구름
꽃비 열 때 산골짝 흐르는 시냇물처럼
들판에 물결치듯 진액 보약 되었고

채마밭 보약 마시더니
황폐한 골짝 싱그럼에 속울음 그치고
휘파람 노래하며 들판에서 춤추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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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기찻길 옆 / 이금자 시인


먹물이 하늘까지
차오른 깊은 밤
오늘도 어제처럼
흔들어 깨워놓고
반시간 남짓 절름거리며
집 앞을 지나간다

무거운 짐칸 백여 개 달고
하루 두 번
어느 곳에
행복을 나누어주려고
저리도 헐떡이며 가는 것일까

힘겨워 토해내는
긴 한숨소리가
귓전에 녹아들어
슬픈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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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우수상 입상작


[시] 매화 / 이세송 시인


동쪽과 서쪽
해와 달 문 열고
산승 홀로
텅 빈 방 지키니

피워 허공 날던 향 구름
달빛 품에 안기고
따스한 봄바람
도량을 서성거리니

매화는 꽃 피우려
그윽한 향기물고
잠에서 깨어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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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꽃들의 전쟁 / 이세진 시인


고요한 담장 옆
수상한 기운 감도는 오후다
금방이라도 폭풍 전야처럼 숨죽이는
매화나무 꽃가지들
장전해놓은 총알들 촘촘하다

거미줄 같은 바람 한 줄기
매화나무 흔들고 갔을 뿐인데
매화는 내눈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무슨 일일까?
오인한 것일까?
언제 방아쇠 당길지 몰라

걸음 멈추고 떨리는 몸
모르는 체 생강나무를 바라보는데
나를 향해 사방에서 불을 뿜는 총구들
마침내 매화향기 자욱한 꽃들의 전쟁을 시작했다
이제 평화는 끝났다
나도 이 황홀하고 미친 전쟁에 나가
매화나무 꽃가지에
붉은 전사 통지서로 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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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청산에 살고지고 / 염동규 시인


적막 속에 기척은
바람의 움직임이 길 잃은 소리였나
애틋한 느낌이 산모에 산고처럼 찰나의 밤
무심으로 뜬 달을 어이하랴

심오한 별빛은 바람결에 흩어지고 고독을
술에 말아 흔들어 혼 술잔 비우니 임 향한
애틋한 마음 누가 알리오

저 멀리 별빛 내리고 달물 촉촉이
가슴을 축이니 푹 젖은 심상
애달픈 시 한 수 청산은 살고지고
시객 낭창소리 사랑은 피고 지니
벽오동 거문고 타는 소리 그윽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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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굽은 길이 좋아라 / 조기홍 시인


곧은 길 보다 굽은 길이 더 좋은 것은
곡선이 직선보다 부드럽기도 하지만
굽었다는 것은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있고
천천히 길을 음미할 수 있어서다

곧은 길 보다 굽은 길이 더 좋은 것은
곡선이 직선보다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자연친화적이서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챙길 수 있어서야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찌 생각대로
다 표현할 수 있는가?
말 수도 덜어내고 넌지시 딴청도 부려보고
벙그러진 해학에 넉넉함도 있어야지

계절이 수없이 바뀌며 단말마 같은
삶이 굴러도 여유로운 곡선의 길처럼
흔들흔들 뒤뚱뒤뚱 흥에 겨워 살다보면
세상사 맛깔나지 않을까?

아, 사랑이여 오라
낙엽 지는 길 굽이굽이 돌고 돌아
잰걸음으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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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村夫夢(촌부의 꿈) / 김동철 시조시인


凝氷裸木哭鵂鶔 (얼음 응결 진 나무엔 부엉이는 울고)
談笑溫房濁酒觴 (온돌방에 담소하며 막걸리잔 기울이네)

艾婦悽然無價穀 (부녀자는 곡식 값없음에 구슬프고)
佃夫負債滿憂愁 (농부는 빌린 농자금 걱정이 가득한데)

天涯冷氣嚴冬沍 (하늘까지 차가운 날씨 혹독히 얼어붙어도)
春化柢根又可觀 (천지조화로 뿌리내리는 농작물 보이는가)

收穫大豐家計苦 (풍년에도 수지 안 맞아 살림살이 힘들지만)
明年必也有希欣 (내년에는 반드시 기쁜 일 있기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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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풀빛소리 / 허대성 시인


죽는 날까지 사랑 가슴에 살게 하리
사랑해서 좋은 날 돌아보면 좋은 날
이 땅에 그 고운 날들 두고 살리

당신을 만난 인연은 축복입니다
다가설 때 설레던 느낌은
서로를 위한 풀빛 의식입니다
간직하고 싶은 사랑의 소리입니다
당신을 처음 만날 때
별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던 말들이
바람처럼 사라진다면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슬플 때나 기쁠 때 기댈 수 있었던 고마움
세월 속에 지워진다면
모든 걸 세월로 탓하기에는
모든 걸 눈물로 말하기에는
큰 후회일 것이고
큰 고해일 것입니다

살면서 소중한 사람들과
늘 좋은 인연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늘 좋은 웃음으로 보답할 수 있도록
아침이 밝아올 때마다
물빛 산란하듯 그대를 위한
고마운 시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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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회】 우수상 입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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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회】 우수상 입상작

 

[시] 할매의 넋두리 / 강성범 시인


그해 가을걷이가 막 시작될 무렵
큰 바람 불고 비가 몹시 내리더니만
저수지 둑이 터졌다네, 아우성치며
온동네 사람들 난리가 아니었당게

삽시간에 냇물은 넘쳐나
논밭떼기는 난장판이 되어불고
정 붙여 살던 누옥(陋屋)은 흔적 없이 사라져
눈물 흘릴 기력도 잃어부렇고

긍게, 큰 아그 대학 학자금 밑천으로
엊그제 갓 사왔던 송아지 바로 눈앞에서 떠내려가도
꺽꺽거리고 울대 뽑을 힘도 없었당게
그러니께 천재지변인지, 말세인지
요단강이 따로 없어불더라고

불 구경 보다 물 구경이 더 재미난다고
이 할망구 노망이 나부렀는지 그 놈의 헛소리 땜에
무너진 방천을 삼킨 냇물에 발 한 짝 헛디뎌븐 순간
오매 구릉구릉 쾅쾅
번개가 퍼붓고 천둥이 터지는디
그만 깜짝 놀라 혼 줄을 불어난 흙탕물 속으로
놔버리고 말았잖여

둥둥둥 떠내려가는
황천길 쓸고 가는 쓰나미 같더랑게
얼매나 지나부렇을까
깨어나분게 느그 아부지는 당산나무 아래 덕석위에 널부러져 있었고
하늘엔 허(虛)한 구름만 무심히 흘러가고
아이고 가슴팍이 쏴헌게 멀건 눈물만 나더랑게

근디야 암만 생각혀봐도
큰 물난리에 사흘 동안 피죽 한 그릇 못 먹은 느그 아부지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부렀는지
이 할미는 여태꺼정 고것을 모르겠다니께 참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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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퇴근길 / 김종국 시인


아무도 볼 수 없는 동굴 속으로 숨어든다
무지했던 지난 시간 있는 척, 아는 척, 최고인 척
부끄러운 하루의 자투리들
시간 앞에 겸허와 겸손이 없었다

고단한 육신의 무게보다
영혼의 무게에 짓눌려
기력조차 쇠잔하여
표표히 장막 뒤로 사라진다

자박자박 쫓아오는 삶의 끝자락
초침이 두려워 숨는다
평안한 영혼을 위해 피안의 세계인
어머니 젖내 나는 가슴이 못내 그립다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 부리며
살아 온 시간 시간들
모든 시름 동굴에 덜어놓고
땅거미 되어 집으로 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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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육학년 방학 / 정종복 시인


다리가 묵직하고 온몸이 지뿌둥해
아직 마음은 사학년 봄방학인데
몸이 맘대로 말을 안 듣는 것을 보니
육학년 방학인 걸 깜빡 잊고 있었지

한 세월 쏜살같이 지나고
남은 날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안돼
날마다 오르막 기어오르지만
내려갈 때가 더 숨차고 후들거리는 건
차츰 졸업이 가까워졌기 때문이겠지

산굽이 돌고 냇가를 건너면서
넘어져서 깨지기도 빠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고
치열하게 걸어 온 세월이 얼마인지

푸른 산을 부르고 바다를 부르고
꽃가람을 놀이터 삼아 세월을 낚으며
친한 벗과 시 한 수 읊조리고
탁배기 한 사발에 둘레판 두드리며
시중선(詩中仙)으로 살다 보면
어느 날 피안의 세계 문이 열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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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원이 엄마 / 권태인 시조시인


안동호 맑은 물결 잔잔히 깊어갈 제
휘영청 푸른 달빛 월영정 밝힐진데
떠나신 당신 그리는 이 마음만 서럽네

 

동짓달 긴긴 밤에 당신이 그리울 땐
머리칼 한 올 잇고 그리움 두 올 이어
당신 발 포근히 감쌀 미투리를 삼았네

 

당신을 닮아가는 원이를 볼 때마다
그리움 견디려고 거닐던 월영교엔
이 밤도 파랗게 떠는 달빛 홀로 외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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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비 오는 날 남편의 빈자리 / 김춘자 수필가


 가경천으로 부터 돌바람이 휙 불어오더니

툭툭 타닥타닥 아스팔트 위에 소낙비가 내린다.

유리창에 부딪치는 빗소리에 창밖을 넘어다본다.

검은 구름이 머리위로 가득 차일을 친 것처럼 덥혀 있다.

이제 겨우 오후 네 시인데 목욕탕 입구부터 계단을 넘실대며 어둠이 찾아왔다.

슬며시 겁이 났다.


 지하에서부터 2층 계단까지 불을 모두 켜고 골프채를 카운터 옆에 두고 앉았다.

비 오는 밤이 무서운 게 아니고 사람이 무서웠다.

친구가 가을배추 모종도 심고 무도 심었다고 했는데

소낙비로 다시 심어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목욕탕 카운터에서 의자를 밟고 유리창 너머 가경천을 쳐다보았다.
 흙탕물이 넘실대며 굽이쳐 흐른다.

다리 밑 웅덩이에 잉어들이 노닐었는데

물길따라 떠내려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참 걱정도 팔자다.

어디든 물길 닿는 곳에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특권이 있기는 해도

사람처럼 정든 곳이 좋지 않을까 싶다.

가경천 물길 가운데 가끔 자라들이 햇볕을 쬐던 커다란 바위가 있다.

자라들도 불어난 빗물에 떠내려갔을 것이다.

어디든 바위가 있는 곳에 안착했으면 좋겠다.


 저녁 8시, 손님 여섯 명이 들어온다.

영업이 끝났다고 해도 비오는 데 여기까지 왔는데

목욕을 하고 가겠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이 들어 이층 남탕으로 안내했다.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기 위해 출입구를 잠그고

카운터에 앉아 TV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어깨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있는 남편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늘 남편이 4시부터 목욕탕을 보고 정리하고는 9시가 되어 돌아왔다. 
 남편은 현관문을 들어서면서 수익금 전액을 내게 건넨다.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목에 걸려 한 번도 못했다.

40년 공직생활을 정년퇴직한 후에도

내가 일을 계속 했으니 집이 휑하니 외로웠겠다.

지인과 함께 밭에 풀도 메고 정원도 가꾸고 논에 물고를 보면서 세월을 낚았다.

목욕탕을 도와주는 동생을 집에 일찍 보내고 남편이 남은 시간을 메꾸었다.

오늘처럼 비오는 날 나처럼 남편도 무서웠을까?

남편은 언제나 내가 필요한 것을 대령하는 도깨비 방망이였다.

어린 아이가 엄마 아빠는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처럼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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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되돌이표 / 최용대 시인


아침 햇살 속에서 콩새들 걸어 나와
창문에 먼지를 깨운다
잘 잤냐는 인사인지 쫑쫑 거리고

하늘 흰 구름 두둥실 떠가는 모습
밤새 우뢰가 투척하는 천둥이 터지고
약한 정령들과 전쟁이라도 벌리는지
부패한 세상을 쓸어내려는지
두려움이 지배한 밤이였다

아침 세상은 공연이 끝나고 난 뒤
모두가 퇴장한 무대처럼 텅 빈 시공간
여기 저기 바람결에 흩날리는 나뭇가지들
여름 따라 갈 것 같은 작별의 몸짓인가

바람에 흔들리는 흰 커튼 사이로
속삭이는 듯 아련히 들리는 소리
먼 길 떠나는 여름의 인사인가
가을이 오는 소식인가
추억이 찾아오는 소리인가

하늘은 회색빛
마음은 와인빛
바람은 초록빛

계절은 하얀 도화지처럼
여름 내내 장독대 한 켠에 말없이 피어 있던 복숭아 꽃잎 빛깔처럼
항상 가슴 한구석을 파고들던 이름처럼

지루함도 잊은 듯
지웠다 그려보아도
다시 또 그 빛깔 그 이름

여름은 그렇게 먼 길을 떠난다 해도
가을은 등에 큰 봇짐을 지고 또 이렇게 돌아오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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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가을 이야기 / 고금석 시인


나무들은 파란 머리에 울긋불긋
염색을 한다
내 머리는 어젯밤 간질간질하더니
거울 속에 무서리가 성성하게 내렸다

은행나무는 남몰래 사랑하여
어느새 새끼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아가들 진한 향기 풍기더니
응가가 뚝뚝 떨어지고
어미는 노란 치마저고리 다 벗어젖히고
늦가을 찬비에 목욕재계하고
겨우살이 의식을 펼친다

감나무 불 지피던 홍엽 다 떠나고
앙상한 가지들만 남았다
주렁주렁한 홍시들
밤새 서리 맞아 쭈그리고 앉아있다
햇살이 가득한 오수, 가을 이야기 무르익고
달큰 새콤한 추시주(秋柿酒) 한 잔에
늦가을 가는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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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봄바람 난 년들 / 권나현 시인


보소, 자네도 소문 들었는가
기어이 아랫말 매화년이
바람이 났당게요

고초당초 보담 더 매운
겨우살이를 잘도 전딘다 싶드만
남녁에서 온 수상한 바람넘이
귓가에서 속삭댕께
안 넘어갈 재주가 있당가

아이고, 말도 마소
어디 매화년 뿐이것소
봄이면 인물 값 좀 한다는 꽃년들은
모조리 궁댕이를 들썩대는 디
아랫마을은 난리가 났당게요

키빼기만 삐쩡 큰 목련부터
대그빡 피도 안 마른 제비꽃년들 까정
난리도 아니라우
워매워매 쩌그 저짝에
진달래년 주댕이 좀 보소
뻘겋게 루즈까정 칠했네

워째야 쓰까이
참말로 수상한 시절이여
여그 저그 온 천지가
난리도 아니구만

그려 어쩔 수 없는 것이제
잡는다고 되겄어
말린다고 되겄어 암만 고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안헙디어

보소, 시방 이라고 있을 때가 아니랑께
바람난 꽃년들
밴질밴질한 낯짝이라도 귀경할라믄
우리도 싸게 단장하고
나가 보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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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회】 특별작품상 입상작

 

[시] 청춘 소곡(靑春小曲) / 조기홍 시인


무서리 내리는 아침
오싹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푸르던 나뭇잎도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나이든 시늉을 한다

지나간 청춘도 화살처럼 빨라
마음마저 훔쳐 달음질 쳤다

메마른 갈대숲의 가슴 하얀 산토끼는
총명한 어린 모습 어딜 갔느냐

그래도 돌아보는 애락(愛樂)과 풍류 속에
벗들이 함께 축복하고 행복을 주니

세상살이 변하지 않는
청춘을 부르는 옛 노래에 빠져
흥얼흥얼하는 오늘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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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울산바위 / 송청락 시인


시퍼런 잇몸이 찢어지게
하늘을 향해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우렁우렁 울분을 토한다

긴긴 세월을 대지에 숨어들어
외롭게 보낸 허송세월이 원통하다

하늘 향해 고하듯
신들에게 항의하듯
굳센 의지와 기백으로 삼천리를
호령하는 장수

백두대간 틀어쥐고
천하를 굽어보며
장대한 기세로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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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초겨울의 기도 / 이종식 시인


하얀 서리가 들꽃에 내리면
잎은 시들고 아쉬움만 남아 목 길게 빼보지만
세상도 마음도 차가운 겨울이 올 것이다

이웃을 돌보기보다 내 살기 바쁘니 어쩌랴
설풍(雪風)이 몰아치는 엄동설한에
이웃들이 들녘으로 내몰리는 혹독한
겨울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 살기 어려워 소외된 울고 싶은 사람들
죽지 못해 사느니 죽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
그들과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누고 싶다

첫눈 내리면 구석구석 깨끗한 마음들
하얀 설화(雪花)로 피어나고
군불 지피는 따뜻한 온정에 손길이 이어지는
그런 겨울이 되길 바라면서
주님과 교재의 시간 그루터기에 앉아
묵상의 기도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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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회】 우수상 입상작

 

[시] 기억의 힘 / 이소월 시인
       - 故 김복동 할머니를 추모하며


복동아! 어여와
우리 애기 고생했네
따뜻한 봄이 오면 제비맨치로
돌아올 줄 알았더니
머리에 하얀꽃 흐드러지게 피어
꽃상여 타고 왔네

고된 전쟁살이 천대받고 짓밟혀도
질갱이맨치로 기어코 살아서 돌아온 고향땅
머리에 생생이 박힌 그들로부터 당한 일
세월이 삭혀도 삭이지 못한 피멍든 상처
예순 넘어 쏟아낸 처절한 피울음

이십칠 년 동안 이어진
일천삼백 번이 넘는 수요시위
어둠이 걷히고 아침이 오듯
시계가 고장 나도 흘러가는 시간처럼
세상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정의
진실의 문을 연 너의 용기
역사가 처절히 기록한 너의 외침
아픈 흔적이 보여준 너의 증언
너는 대한의 치욕의 딸이 아닌
자랑스러운 딸

꽃처럼 어여쁜 열다섯 살
복동아!
이제는 제국주의자들 군복 만들러
가지 않아도 되니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백인의 영웅,
여성인권운동가 칭호 내려놓고
위안부 할머니 꼬리표 떼어내고
아무도 자유를 구속하지 않은
네가 태어난 모성(母星) 너의 별에서
소녀의 꿈 가득 피우렴

꽃보다 나비 되어
네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
별천지 우주를 자유롭게
훨훨 날아 다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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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연민 / 심우종 시인


노을 속으로 묻혀버린 그대
밀어에 흔들리는 여인의 마음
파도에 부서져버렸어

중후한 갯바위 신사처럼
견디는 너의 상처는 천년이 되어도
아물지 않는 가련한 슬픔

이제는 그리움도 사랑도 지워야할
흔적인 것을
그래도 그대가 그리워지면
언제라도 볼 수 있도록
노을에 너의 환상 걸어 놓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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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내 안에 무게 / 김용식 시인


찬바람에 살가죽 온몸이 얼었다
고드름으로 얼어버린 슬픈 이야기
세상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이 차다
아침 햇살이 창문에 머무는 동안
메아리가 들지 않는 산속에 내가 있다

행복은 잡히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너 안에 내가 있다면 느낄 수 있는데
좋아하는 꽃나무의 이슬은
마음에 담아두면 눈물이 되고
마음 비울 땐 향기가 난다

살아 갈수록
눈물 날수록
넉넉할 수 있음은
슬픔이 주는 무게 때문일 테지

삶은 자기 그림자를 평생 끌고 가는 길이다
마음 비울수록 자신을 녹여
속마음 전하며 사간을 떠나보낸다
사무치도록 녹아내린 꽃향기엔
눈물이 묻어 있고
침묵 속에서도 나의 간절함은
바람타고 전해지리라

끝없는 목마름
널 생각날 대마다 내 안에는
설레임이 주는 아름다운 기억을 만들고
침묵할수록 너를 닮아가고
가벼운 날갯짓에도
행복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누군가 내 안에 이미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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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선악과(善惡果) 이야기 / 박수연 시인


누가 심었을까?
마을 한복판에
아름드리 선악과나무 한 그루

키는 하늘에 닿고
무성한 잎사귀는 하늘을 덮었지
가지마다 탐스런 붉은 열매
먹음직스러워라

하나 둘 사람들은
선악과나무 아래로 모여들었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선악과 움켜쥐었지
괴이하여라

붉은 선악과 저마다 굽은 잣대로
선악(善惡)을 분별하니
자기 눈 속의 들보는 보이지 않지
남의 눈 속 티끌만 커 보여라

이후로 평화롭던 마을은 눈만 뜨면
고성에 삿대질에
바람 잘 날이 하루도 없게 되었지
선악과의 저주가 내렸어라

왜 심었을까?
마을 한복판에
먹음직스런 선악과나무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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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엄니의 포대기 / 박지수 시인


긴 숨을 내린다
무의식의 의식의 상황 속에서
엄니를 부르신다
엄니, 엄니
삼남 일녀의 둘째로 태어나
조실부모 하시고
단명하신 형이 남겨둔 형수와
팔 남매의 조카마저 가버린 동생의 처와
그 자식들까지 모두를 안으며
거북이 등짝 되도록 살아오신
나의 아버지

많이, 아주 많이 힘이 들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으실 때
탁한 막걸리 한 잔 심장에 밀어 넣고
홀로 속울음 삼키시던
나의 아버지

얼마나 부르셨을까
얼마나 부르셨을까
엄니, 엄니

생의 마지막 경계에서 다시 부른다
아버지가 부르시는 엄니가
자식들이 안아주지 못한 아버지의 가슴을
안아주실 것이리라

아버지가 넘으시는 고갯길
아버지의 엄니가 포대기 들고
오라오라 어서 오라
손 흔들며 기다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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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수묵화 / 나영봉 시인


어제 밤에 내린 비로 촉촉해진 붓꽃
흔들리는 마음 붓 끝에 모으고
한 자에 한 획씩 그어나간다

붓 대공에 힘주면
한 순간 옥잠화 꽃을 피우고
흐트러지는 물방울은
꽃봉오리 위에 내려앉아 암술이 된다

꽃잎에 머무는 나의 간절한 기도
우아한 몸짓 한 번 보듬은 밤
새벽에 일어나
경건하게 단장한 붓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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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퇴계 이 황 & 어머니 / 안승기 시인


퇴계 이 황 선생은 율곡 선생과 함께
훌륭한 인격과 깊은 학문으로
후세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는
조선 선비 중의 선비다

율곡 선생의 뒤에는
어머니 신사임당이 있었듯이
퇴계 선생 뒤에도 어머니 박씨 부인의
각별한 교훈의 힘이 있었다

아이들이 점점 커가자
부인은 예법(禮法)대로 자식들을 가르치며
옳은 길로 인도하러 온 정성을 기울였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땐
항상 비유를 들어 알아듣기 쉽게 타이르며 교육했다

퇴계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사물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으며
글 일기를 좋아해 밥 먹고 잠자는 것까지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는 몸이 약해 병까지 얻었는데
어머니 박씨 부인은 글 읽기보다는
행실 닦는 것을 더 중하게 생각했다

퇴계는 어머니의 훈계를 명심하여 듣고
글을 읽는 것 뿐만 아니라
품행을 단정히 하고 덕을 쌓기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그의 학문성과 도덕성이
다 같이 뛰어나 조선팔도의 표상이 되고
후세의 사표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자식 교육 시킬 때
꼭 비유를 들어 훈육을 했다고 하니
교육자이자 시인이다
비유와 은유가 생활화 되어서
밥상머리 교육 책상머리 교육한다는 것
기본 소양을 중요시 한다는 것
곧, 최선상의 운율이고 최고의 지성이다

퇴계 그는 자연시 매화시 애민시 인사시
수많은 시를 지어 도학주의 문학을 실천궁행한
위대한 도학자적 시인이자
민애(民愛) 사상을 지닌 시인이다
퇴계의 문학정신은 후예들의
정신적인 삶을 풍요로이 한다
모전자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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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달아난 은비녀 / 남미숙 수필가


  무남독녀로 열아홉에 삼남매 막내며느리로 시집왔다.

초등학교 졸업에 일본어도 곧잘 구사하는 신여성 그녀가 엄마였다.

엄마가 가르쳐준 그림일기 쓰기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엄마는 그림도 참 잘 그리셨던 것 같다.
 양반집 참한 규수 같은 얼굴이었지만 어떤 일이든 척척해내는 여장부였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밖으로 돌며 풍류를 즐기셨고

엄마 속을 무지 썩였다고 큰 언니가 언젠가 말해준 적이 있다.

하지만 엄마의 입에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늘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지만 한숨이 묻어 있었다.

긴 한숨으로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하면서

먼 산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와의 핑크빛무드의 세월을 토해냈다.


  70여 년을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으로 살지 않으셨다.

“엄마” 하고 입속으로 불러보면

정갈하게 빗어 넘긴 어머니의 고운 얼굴이 내 마음에 파고든다.
 어머니는 그랬다.

눈 뜬 아침이면 작은 경(鏡)을 꺼내시고는

끝이 뾰족한 빗으로  가르마를 가르고 곱게 빗질을 한 다음

왼손 중앙에 한 방울 동백기름 떨어뜨려

두 손으로 비벼 가르마 아래로 곱게 손으로 빗질을 했다.

어쩌면 엄마는 아침마다 객지 나간 오빠들 생각하며

옆에 빤히 보고 있는 막둥이 생각하며 쓸어내렸을 것이다.


  엄마의 손길이 매끄럽지 않아 손바닥에 머리카락이 딸려오는 것을 보았다.

거친 손끝에는 엄마의 고달픈 숱한 나날이 들락거린 세월을 말해주고 있는 듯

등이 가려우면 엄마의 손은 지금 나무로 만든 효자손보다 시원했다.
 고무장갑에 속 장갑까지 끼고도

주부습진이니 뭐니 하면서 병원을 들락거리는 호사를 누리지만

나는 맨손을 좋아한다.

엄마의 정이 그리워서일까? 

나는 가끔 남편의 등을 긁어주면서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의 쪽진 머리를 빛나게 하는 것은 서울 간 큰 오빠가 엄마 환갑 때

선물한 열 돈짜리 은비녀다.

머리를 다듬을 때마다 한참을 들여다보는 은비녀.

잠자리에 들 때는 얼마나 소중했으면

하얀 보자기에 싸 머리맡에 두고 주무시곤 했다.

아마도 오빠를 맞이하는 것처럼 그

윽한 미소는 은비녀를 더 빛나게 하는 것 같았다.

은비녀가 엄마에게 오기 전에는 늘 청자빛 도는 옥비녀가 전부였다.


  5일장이 열리는 장날아침,

장에 가져갈 물건을 광주리에 가득 채워 놓고

머리를 손질하던 엄마 옆에 다소곳하게 놓인 비녀.

난 신기한 그 물건을 볼 때마다 호기심이 발동해

엄마가 머리를 고르는 동안에 장난감처럼 엄마도 찔러보고

내 손바닥도 꾹꾹 눌러보고 손으로 구슬을 굴리듯 굴려도 보고

짧은 내 머리를 돌돌 말아 끼워보기도 하며

엄마의 사랑을 가지고 놀았다.

순간, 머리에 끼워놓은  비녀가 툭하고 소리를 내며 두 동강이 나버렸다.
 난, 큰소리로 울기부터 했다.

아버지의 유품처럼 잃어버릴까봐

비녀머리 쪽에는 실 같은 것을 매달아 함께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엄마는 가슴으로 토해내는 긴 호흡을 하면서 

나를 야단치기 보다는 시장에 가야하는 일이 걱정인 것 같았다. 


 부엌으로 간 엄마는 땔감으로 준비해 놓은 작은 가지를 곱게 다듬어

비녀 대신 머리에 꼽고 시장에 가셨다.

그래도 참 예쁜 엄마였다.

가슴으로 담고 있던 옥비녀가 사라진 다음에는

오빠의 사랑이 엄마와 함께 늘 동행했다.

은비녀를 꼽고 부터는 그런 일은 없었다.
따르릉 늦은 오후 아직 아들이 걸어 나오기 전 한통의 전화,

엄마가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어마가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주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속력을 다하여 달려갔다.
 도착하여 엄마를 찾았을 때는

엄마는 보이지 않고 싸늘한 냉동고에 들어갔다고 했다.

난 한여름에 나의 모세혈관 하나하나가

다 얼어붙는 것 같은 추위를 느꼈다.

주변에서는 “뺑소니래?” 하면서

그리고 또 뒤따르던 오토바이가 또 치었다고 하면서

여기저기 웅성거렸고

머리 수술하였다는데 평생을 기른 머리를 잘라 다 밀어버렸다고 했다.

염을 할 때도 난 엄마를 보지 못했다.

미신인지 모르지만 염을 하는 분이

그날의 운이 안 맞아 보지 말라고 했다.


  늦은 마흔다섯 나이에 나를 낳고 홀로된 엄마는

자식 일곱을 키우시면서 베갯모에 흘린 눈물
그 숱한 날들이 아까워 어찌 눈을 감았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생일이나 어머니날이면 작은 선물 하나로

내 마음 편하자고만 산 날들, 난 돌아앉아 통곡했다.


 엄마! 아직 다하지 못한 언어들이 허공에서 흩어지고

당신을 생각하면 두 눈 가득 눈물로 가득인데 늘 엄마는 그랬다.

언제나 엄마인걸로만 알고

진정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는데도 엄마는 그대로 인줄만 알고 살았다.
 그날 밤 난 자는 듯 마는 듯 선 잠을 자는데,

너무 갑자기 떠나시는 바람에 자식에게 할 말이라도 하려는지

엄마가 꿈속에서 비녀를 찾고 있었다.

아마도 비녀를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자식을 찾고 계셨을까? 생각해본다.

부르다가 말문까지 막혀버렸는지

나는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한숨을 토해내듯 깨어났다.

난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가 눈을 뜨면서 오빠에게 물었다.


 “엄마 비녀는 어디 있어?”


 비녀가 없었다고 했다.

사고로 달아난 것이었다.

엄마는 그랬다. 죽으면서도 분신처럼 달고 다니던 비녀,

먼 나라에 가서 머리를 길어 비녀를 꼽고 다니시려는지.

사고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엄마는 정정하게 살아계셨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총기를 지니고 산 우리 엄마.

남씨 집안에 명이 다 짧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도 친척이 거의 없었다.

어른들이 살아계셔야 왕래가 잦아지는데

단명을 하셔 친척 간에도 서로 모르고 사셨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내가 그 명을 이어 오래 사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때도 엄마를 보고 동네사람들은 파마하라고,

귀찮게 숱도 없으면서 매일 지극 정성이라며

엄마에게 온갖 달콤한 말로 엄마를 미장원 가자고 해도,

엄마는 평생을 고집한 쪽진 머리를 하고 사셨다.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으로 밀려 올라오는 그립다는 말도

보고 싶다는 말도 눈물로 가슴을 채울까봐서

흘러가는 노을진 강둑에 서서 혼자 가만히 엄마를 불러본다.


 엄마 엄마 엄마!

 

어머니 시대엔 남편보다 자식에게 더 의지하며 살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세대까지는 보모님과의 사랑이 지극한지도‧‧‧‧‧‧
 엄마의 모습에서 나를 찾고 싶은지 나는 올린머리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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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회】 특별작품상 입상작

 

[시] 다선 / 이세송 시인


별빛 밤하늘 가득한 은하수 물결
흰 구름 돛대 만들어 올리니
초승달 올라타 둥실거리니

어디선가 고운 향기 찾아 걸터 수니
어둠 거둬주는 여명이 반갑다
하늘빛 붉게 물들여주는구나

미풍 일어나 도량 서성거리고
푸새 잎 주렁주렁 수정구슬 꿰어
살랑이는 바람 손잡고 춤을 추니

노승 다실(茶室)에 혼자 앉아
죽로차(竹露茶) 우려 마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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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봄에 나를 묻고 / 강은주 시인
            -새봄을 찾아 다시 태어나리


겹겹이 쌓인 상흔
설화(雪花)의 눈물로 쏟아낸 채
먼 길 떠날 채비 하는구나

하얀 손수건에 붉게 수놓은 사연
가녀린 날갯짓할 때

삭풍(朔風)은 자목련 치맛자락에 누워
잠을 청하는구나

흥건히 젖은 베갯머리 비린내
너의 마법의 눈이 멀어 앞을 못본들
내 어찌 너와 함께 한 초록의 향연을 잊겠는가

봄이 미쳐간다
이 미쳐가는 봄에 나를 묻어바리고
새봄을 찾아 다시 태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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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잉어빵 / 정종명 시인

 

모질게도 차가운 삭풍(朔風)
강물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다

겨울은 뼈마디가 굳어 삐걱거리는데
황금가사장삼 걸친 잉아 가족
언 몸 녹여 참선에 들고자
뭍으로 동안거 나와 골목어귀 좌판
법당 난롯가에 엎드린 채
조곤조곤 나누는 맛깔스러운 대화가
군침을 돌게 한다
건너편 선방에도 붕어 가족들
머리 조아린 수행에 숙성된 고소함은
지나가는 허기진 눈망울 유혹하며
따스한 온기로 진리의 향기 내뿜으며
지그시 눈 감고 참선에 들었다

찬 공기 대밭처럼 빼곡히 진을 친
골목 양쪽에서 풍기는 비릿한 내음이
어둠 따라 퍼지는 꿀 같은 유혹에
하루를 걸어온 주린 속 채워갈
발걸음 잡아 세운다
한기 온몸 덮치는 삼동(三冬)
얼어붙은 강물 시려워
골목 언저리 좌판 법당에
몸 던져 한 몸 뜨겁게 달구었다

아낌없이 몸 보시하고 떠나는
금빛 살신성어(殺身聖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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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꺽지의 부성 / 신광철 수필가


초여름 비 갠 강가에 풀빛은 더욱 짙습니다.

자잘한 나비 새끼들은 무리지어 강가를 수놓고 있습니다.

갓 부화된 비오리 새끼들의 아장거림에 어미 비오리는 그저 애만 탑니다.
 뻐꾹뻐꾹,

어미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서 태어난 자기 새끼를 부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여울소리가 파르르 떨며 초여름에 메아리칩니다.

여울을 가로지르는 무자치의 파문이 그대로 여울 끝으로 굴러 내려갑니다.

또 다시 비가 한바탕 시작될까요?

이곳저곳에서 뭉게구름이 피어납니다.

그러나 비는 내리지 않고 하늘만 더욱 높습니다.


  강여울 끝 물속에서 분주한 것은 꺾지 한 마리입니다.

물살에 떠 내려 온 나뭇가지가 힘에 벅찬 모양입니다.

나뭇가지를 물어다 버리고 한참 후에 돌아온 꺽지는,

다시 배를 뒤집어서 돌 천장을 지느러미로 부채질 하듯 깨끗이 청소합니다.

그리고는 집 앞에 떡 버티고 서서 등지느러미를 곧추 세우고 있습니다.
 암컷을 유혹하는 모양입니다. 잠시 후 암컷 한 마리가 다가옵니다.

두 마리의 꺽지는 서로의 꼬리 지느러미를 잡으려는 듯 빙빙 달무리를 섭니다.

사랑을 나누는 가 봅니다.

잠시 후 암컷이 잘 닦아놓은 돌 천장에 배를 붙이더니 알을 낳기 시작합니다.

뽕글뽕글 수정 알처럼,

다롱다롱 이슬방울처럼 꺽지 알들은 돌 천장에 하나씩 붙어 갑니다.
 암컷이 알을 다 낳고는 힘에 부친 듯 배를 뒤집을 때,

수컷 꺽지가 정액을 뿌려댑니다. 아빠 꺽지가 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아빠 꺽지는 고민이 있는 가 봅니다.

돌 천장에 반만 붙어 있는 알들이 영 못마땅 한가 봅니다.

다시 집 앞에 내려오더니 아가미를 크게 폈다 오므렸다 하며 암컷을 유혹 합니다.

잠시 후 암컷이 또 나타납니다.

암컷은 반  남은 돌 천장을 마저 채우고 느릿느릿 된여울 속으로 돌아갑니다.

아빠 꺽지가 더욱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돌 천장에 빼곡이  붙어 있는 알들에게  지느러미로 부채질해서

산소를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가슴지느러미로 알들을 가끔씩 뒤집어 주기도 해야 합니다.

알을 탐내는 돌고기, 납자루, 갈겨니도 저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빠 꺽지는 전혀 힘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먹지 않아도 자지 않아도 마냥 뿌듯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큰일 났습니다.

저 앞에서 메기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아빠 꺽자 보다 훨씬 더 큰 메기입니다.

아빠 꺽지는 큰 메기가 무섭지 않은가 봅니다.

등가시를 날렵하게 세우더니 곧장 메기에게로 달려갑니다.

들이받을 듯, 메기의 수염을 잡아챌 듯 말입니다.

그러자 메기는 도망쳐 달아납니다.

아빠 꺽지의 승리입니다.
 메기가 도망친 후, 이제는 얼룩동사리가 다가옵니다.

크기는 아빠 꺽지와 엇비슷하지만 얼룩동사리에게

한 번 물리면 끝이라는 걸 아빠 꺽지는 알고 있을까요?

그러나 아빠 꺽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가시를 세우고 아가미를 벌리고 입을 뿌역뿌역 두세 번 하니까

얼룩동사리는 슬그머니 꼬리를 빼고 달아납니다.

이번에도 아빠 꺽지의 승리입니다.

돌 천장에 매달린 자식들 앞에서 아빠 꺽지는 의기양양합니다.


  다시 지느러미를 부지런히 움직여

알들에게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 줍니다.

이쪽 저쪽 왔다 갔다 하며 알들을 차례로 한 바퀴씩 굴려줍니다.
 잠시 후였습니다.

돌 천장위에 ‘툭’하는 소리가 나더니

허리가 굽은 은색을 띤 녀석이 바닥에 툭 떨어집니다.

저 녀석이 무엇일까요?

이상하게 생긴 녀석을 아빠 꺽지는 한동안 응시 합니다.

허리가 굽은 이상하게 생긴 녀석은 그런 아빠 꺽지가 무서웠나 봅니다.

홀짝홀짝 몸을 튕기면서,

그리고 하나뿐인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쏜살같이 사라집니다.

이상하게 생긴 녀석을 쫓아 보낸 후,

잠시 평화가 있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또 무엇일까요?

날개를 팔랑팔랑 돌리는 이상하게 생긴 녀석이 바위 밑으로 뚝 떨어지더니

다시 날개를 팔랑팔랑 돌리며 사라집니다.

이런  녀석, 아빠에게는 큰 유혹이지만  아빠 꺽지는 잘도 꾹 참아냅니다.


  며칠 후, 아빠 꺽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메기와 얼룩동사리 까지 쫓아버린 아빠 꺽지가 왜 보이지 않았을까요?

자식들 앞에서는 가장 멋진, 가장 용감한 아빠 꺽지였는데 말입니다.

며칠 전에 나타난, 머리는 둥글고 등에는 가시를 하나 달고,

몸은 흐물거리는 녀석 때문이었나 봅니다. 

돌 천장에 떨어지는 그 녀석을 처음에는 못 본 척 했지만,

연거푸 집 앞에 떨어지는 그 녀석에 대해,

자식들을 위협하는 위험 대상으로 여겼나 봅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입니다.
아빠 꺽지는 그 녀석을 한 입에 가로챘습니다.

그리고는 힘껏 당겼습니다.

그러나 그 녀석의 힘은 의외로 강했습니다.

아빠 꺽지는 자기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딘가를 향해 질질 끌려갔습니다.

저항은 했지만 아빠 꺽지의 저항은 아주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때 물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야! 신발짝 꺽지다.”
그 후 아빠 꺽지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고,

돌 천장에 붙어있던 꺽지 알들은 하나둘씩 썩어 갔습니다.

짙푸르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saemmooon news>

 

발행인 이정록 회장

취재본부장 오연복 기자

보도본부장 김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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